[리뷰] 존재통의 누름굿 / 서브스턴스(2024)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 4.5/5

개봉 | 2024

장르 | 공포/드라마

제작 | 영국, 미국

감독 | 코랄리 파르자

출연 |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등

 

Take care of yourself.

 

시대의 흐름 막차를 탔습니다. 사실 서브스턴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해 부국제였어서 차가 들어오는 것부터 쭉 지켜보다가 정규 편성 다 떠나고 추가 배차 들어올 즈음에 탄 거예요. 여태 왜 안 봤냐면? 무서워서... 국내 개봉도 하기 전 지난여름쯤에 캐나다에서 첫차 탄 친구한테 물어 줄거리를 모두 듣고 혼자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그렇게 '못 볼' 영화로 도장을 찍어두고 영화의 반전요소 평론 복선 김냄비펌피럽 따위를 쿠션 없이 받아들였는데 이쯤 되니 슬슬 내가 영화를 봤는지 안 봤는지 헷갈리고 비구매덕질인 것 같고(덕질한 적은 없지만) 엘리자베스 언니가 이웃사촌 같고 어떤 자신감?이 생겨나면서... 그러는 와중 왓챠가 서브스턴스를 들여와버리면서 다시 추가 배차가 들어오고... 동네잔치에 나만 소외되는 기분이 들어 ㄹㅇ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반년만에 마주한 서브스턴스...

 

2024년 정말 흥행한 독립예술영화(+소지섭 썹픽)인 만큼 호불호를 넘나드는 평론, 수많은 밈... 이미 나올 건 다 나와서 그런 이야기는 차치해 두고요 그냥 보면서 느낀 점만 써볼까 하네요 두서없이...

 

영화 내내 마거릿 예쁘다고 가스라이팅 함 난 당함 그리고 죄책감 느낌

우선 생각보다 엄청 잘 봤습니다. 불호는 아니더라도 엄청 호~인 영화는 아닐 줄 알았는데 정말 너무너무 좋았고요 5점을 주지 못한 이유가 내용을 알고 봄 +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니 사실 영화만 놓고 따지면 5점이네요. 근데 내용을 모르고 영화관에서 봤으면 지금만큼 편안하게 감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그냥 관측했더니 4.5가 나온 슈뢰딩거의 서브스턴스인 걸로...

 

보는 내내 감독이 이 영화를 '설계'했고 그 그림을 위해 초 단위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가 연기로 꼬집어내는 아주 섬세한 디테일, 그걸 보고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 그것들이 전부 감독의 의도라는 확신(단어의 뉘앙스로 따지면 신뢰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은)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그걸 정말 잘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서브스턴스는 대사보다 사운드와 이미지로 많은 것을 전달하는... 그럼에도 깊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관적인 영화입니다. 심지어 영화에서 질질 끄는 건 반 죽은 인간 몸밖에 없다 싶을 정도로 템포와 전개가 빨라요. 2시간 20분 동안 500가지의 잘못된 선택을 펼칠 "퇴물" 엘리자베스의 인생을 설명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죠.

YOUNGER. MORE BEAUTIFUL. MORE PERFECT.

 

그 직관적인 이미지 속에서, 어쩌면 정신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레이어를 읽어내는 건 개인의 몫입니다. 그건 감독이 쌓아 올려 설득시킨 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런 부분에서 감독의 해상도와 표현력이 정말 탁월합니다...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던 누군가는 '알고 있는' 부분이니까 굳이 촌스럽게 대사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거죠.

 

물론 영화에는 결코 정답이 없고 그걸 읽어내는 것도, 읽어내지 못하는 것도, 혹은 아예 다르게 읽어내는 것도 모두 관객으로서 영화를 완성시키는 방법입니다. 다만 감독의 의도라는 건 분명 실재하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검은 수녀들에 큰 유감이 있는 건 진짜 아닌데 자꾸 머리채를 잡아서 미안하지만 권혁재 감독은 다시 태어나도 이런 영화 못 만들 것 같았고 그런 맥락에서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감상이 남았습니다. 사실 별로 안 미안함...

 

데미 무어 캐스팅은 메타적으로 정말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고어도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이건 아마 겁을 너무 먹고 간 탓인 듯... 항간의 소문만큼 잔인하진 않았네요 오히려 이런 장르 치고는 스무스한... 것 같은데? 모릅니다 견식이 좁아서... 폭력 장면은 아프긴 했지만... 에이리언은 속 메스꺼워하면서 잘 보는데 로우는 보는 내내 속이 뒤집히고 진짜 아파 죽을 뻔했던 걸 보면 아예 판타지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서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호러 카테고리 중에서도 바디호러를 무서워하는 편이고, 바디호러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기괴함이나 불쾌함보다 비가역성(+본인의 신체를 통제하지 못하는 점에서 오는 불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서... 서브스턴스의 가장 무서운 바디호러는 노화예요. 실제로 처음 가장 공포스럽게 다가왔던 장면은 수가 처음으로 교체의 규칙을 어긴 후였고요. 그러면 마침내 이런 깨달음을 피할 수 없게 되는데: 아 여성의 삶은 그 자체가 바디호러구나.....

 

그러면 이제 이 영화가 다시금 다큐멘터리로 돌아옵니다. (젠장~) 그래서 차라리 후반부에 가서는 마음이 편했습니다. 참깨라면 4개입 하하 같은 표정으로 모든 전개를 겸허히 받아들였어요. B급으로 치닫는 전개가 뇌절 같다는 말도 종종 보였지만 그다지 공감은 안 되더라고요 지금엘리자베스언니성불하시겠다는데뒤질라고...

 

그래, 돌이킬 수 없으면 다 죽자!

그래서 전체적인 감상: 그냥 너무 슬펐다...... 엘리자베스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 마음 그 모든 선택이 이해가 가서...

 

사실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외모정병 자체는 거리가 유지돼서 괜찮았어요. 앞에서 이미 알고 있다 같은 소리를 하긴 했지만 아는 것과 공감은 다른 문제니까? 그래서 서브스턴스 보고 여자들은 외모정병 심해짐 or 구마됨 같은 트윗에는 동의하지 않거든요 근데 자기 파괴의 맥락에서 느껴지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물론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 자체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젊음과 아름다움('인간'은 반드시 늙고 마는데도), 커리어에서 밀려나는 중년 여성의 불안 등이긴 하지만, 그걸 빼고 보더라도...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죄책감을 미뤄두고 그걸 다음 날 고스란히 느껴본 경험이 있는 이상 아플 정도로 공감이 되는 영화였습니다.

 

처음 줄거리를 전해 들으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 '근데 같은 사람 아니야? 그런데 서로를 그렇게 미워해?'였는데... 엘리자베스와 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심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서, 근데 동시에 그건 내가 절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she'라서ㅋㅋㅋ 그렇게 죽일 듯이 미워할 수밖에 없는 거야 자아와 인격의 분리 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내 인생을 망치고 있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미운 또 다른 나'라서!!

 

나는 정말 하나일까

그리고 위 지점을 이해해 버리는 순간 엘리자베스와의 거리감이 너무 좁혀져 버렸습니다...... 이미 숱하게 밈화된 멘탈나락페스티벌, 엘리자베스의 500가지 가속좆됨선택지, 그런 심상은 와닿지도 않았어요(물론 줄거리를 알고 2회차의 마음가짐으로 관람한 탓도 큰 것 같지만) 같이 본 친구는 수가 남은 치아까지 뽑아버리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는데 저는 정신병 농도가 더 높아서 그 마음 또한 이해가 됐다고나 할까요? ㅠㅠ그건 그냥 그거잖아... 늦잠을 자서 오전 일정을 망쳐버리면 그냥 그날 하루를 통째로 버려버리는 그 심리... 액셀만 있고 브레이크는 없는데 이미 멈춰야 할 지점은 지나버려서 그냥 액셀을 밟아버리는 가속 자기 파괴... 

 

해서... 뭐랄까... 저는 억지스러워도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편인데(반대에서 큰 공허함을 느낌) 서브스턴스의 엔딩은 아주 꽉 닫힌... 충만한... 그런 느낌을 줘서... 허무함도 찝찝함도 남지 않았어요. 여운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영화가 그냥 롤러코스터 같음. 360도 회전하는 구간에서 내리지 않잖아요? 영화 상영 내내 올라갔다 내려갔다 엉망진창으로 조져지는 그 완결된 코스를 즐긴 후에 속도 줄이고 안전바 풀고 퇴장한 느낌... 웃기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성불? 한 것에 가까운 감정...

 

엘리자베스가 살인마로 각성해서 남자들에게 징벌을 내리는 슬래셔물이 아니라서 좋았어요. 그보단 더... 아... 몰라... 물론 엘리자베스에게 가혹한 결말이라는 것도 이해하지만... 서브스턴스는 영화를 보는 나까지 징벌해버린 영화라서 좋은 거고... 그 징벌의 수단이 기어코 자기 파괴로 귀결되었다는 점까지가 완성이라고 생각해 나는...